다음은 법원게시판에 올라 온 금산시군 법원장인 유재복 부장판사의 글이라며 참고로 보라고 판사로 재직하고 있는 친구가 보내 온 메일 글로 요사이 뉴스를 장식하는 문제로 우리 모두 한번쯤 다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 소개합니다.


[무차별적 폭로에 대하여]

  혐오스럽다. 그 자리에 그 정도의 기간 동안 재직하였으면 흡족하게 물러날 수 있었을 대그룹의 회장이었던 분이 자신도 형에게서 물려받았던 그 자리를 동생에게 배턴터치(baton-touch)하게 되면서 그게 아까워, 동생에게 치명타를 날릴 비밀을 서슴없이 불어버렸다. 직무상, 그것도 불법도청으로 입수한 남의 약점을 갈취의 미끼로 삼다가 먹혀들지 아니하자, 뻔한 속내는 감춘 채 앞뒤 안 가리고 까발리고 있다. 형제간의 도리나 직업인으로서의 윤리나 심지어 법마저 어기면서까지. 자신들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불법행위에 대하여 뒤늦게나마 뉘우치고 고해성사 하는 마음으로,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하는 폭로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그러나 영 그렇게 보이지는 않으니 추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무차별적 폭로전이야 어디 어제오늘에 처음 보는 모습이던가. 선거 때만 되면 으레 있어온 추태요, 심심찮게 보아온 이전투구가 아니던가. 대개는 마녀사냥이거나, 궁지에 몰린 자의 간교한 발악이었다. 뻔뻔스럽게도 ‘양심선언’이라는 미명 하에 직무상 알아낸 비밀을 침소봉대, 각색까지 하여 까발리고는, 마치 용기 있는 행동이라도 한양 우쭐대고, 상혼에 빠진 매스컴은 서로 질세라 구미에 맞는 내용에 초점을 맞춰 호들갑을 떨었고, 덩달아 여론도 시끄러웠다. 신이 난 그들은 조롱하고 빈정거리며 확실한 증거라도 가지고 있는 듯이 길길이 날뛰다가도 끝내 허위로 밝혀지면, 슬그머니 “아니면 말고”라며 얄미울 정도로 딴청을 부리고, 그러면서도 당당해 하고. 동조라도 하는 것인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보도하던 매스컴이나 들끓던 여론마저 태풍처럼 지나가면 그 뿐이었다. 너무 쉽게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빙산의 일각처럼 그래도 일부라도 밝혀지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보다는 늘 후유증이 더 심각했다.



  늘 명분은 좋다. 국익이나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니. 명분만 좋으면 적법절차는 무시해도 된다는 것인지. 그 자신이 대개는 바로 그 위법행위나 비리의 공범자이거나 방조자이거늘, 비호세력이라도 있다는 듯, 거침없이 까발리고 들추어낸다. 하나같이 공명심을 내세우면서. 그러나 그 속내는 뻔하다. 실추된 입지의 만회나 갈취의 실패로 인한 오기이거나 잘 나가는 사람에 대한 뒤틀린 배아픔이거나 마녀사냥이다. 이러한 치사하고 음흉한 행동거지가 쇼킹한 뉴스거리에 목을 매는 매스컴이나 기득권에 무조건 불만인 사람들에 의하여 엉뚱하게 미화되고 영웅시되기 일쑤이다. 이러한 바보놀음에서도, 군중심리의 늪에 빠지게 되는 필부필부는 절차의 위법은 보지 않고 진위도 모르는 내용만 보고 광분하게 된다. 몰염치한 그들의 놀음이 너무 쉽게 먹혀드는 풍토가 아쉽다.



  불법이나 비리를 덮어주고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위를 무조건 용서해 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나무만 보지말고 숲도 보자는 취지이다. 유능한 사람일수록 결점도 능력에 비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록 가난하여 손가락을 빨망정 윤리,도덕이나 체통만은 지키며 사는 양반정신에 투철한 지도자를 원한다면 할말은 없다. 그러나 지도자라 하여 모두에 대하여 성직자와 같은 엄격한 도덕성을 갖출 것을 기대함은 과욕이라고 본다. 지도자에게는 능력과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지도자만 바라보고 사는 일반국민들은 위기에 닥치더라도 걱정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아무리 투명성이 제고되고 국민의 알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지만, 한계는 있다고 본다. 국익도 따져 봐야 하고, 형평성도 고려해 봐야 하고, 공과도 비교형량 해 봐야 한다. 국익은 법치나 정의에 앞선다. 현재의 잣대로 과거의 행위를 단죄하려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과보다 공이 더 크다면, 그냥 덮어두어야 할 때도 있다고 본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데, 잘 나거나 잘 나가는 사람을 다 매장시키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본받아야 할 사람이 없어진다. 적당한 눈가림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금강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계곡물이 정화수처럼 맑고 깨끗했다. 그러다 보니 물고기나 물벌레는 물론 수초마저도 살지 못했다.



  지도자의 자질로 청렴성과 도덕성을 너무 강조하면, 천명이라도 먹여 살릴 유능한 천재들은 밀려나고 입심 좋은 궤변가만 남게 된다. 번지르르한 말재주나 말재간만으로 글로벌시대의 살벌한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지도자에게는 말보다는 실천, 의욕보다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이념마저 버리는 것이 21세기형 세계지도자들이다. 유능한 지도자는 밀어주고 키워주는 풍토가 아쉽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아파하는 비뚤어진 의식에 사로잡혀, 잘 나가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몰매부터 던지고 보는 행위는 한순간 후련할는지는 몰라도 너무 잔인하고 무익하다. “너희들 중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요한 8:7). 대개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니, 역겹기까지 하다. 아무리 흉포한 범죄자라도 적법절차에 따라야 한다. 여론재판으로 매장시킨 다음 누명을 벗겨준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부터는 인민재판과 하나도 다름없는 여론몰이로 결딴내는 경우가 너무 많고 그 피해도 너무 크다.

  

  솔직함이라든가 투명성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다 까발린다면, 사회가 너무 삭막하고 살벌해 질 것이다. 신부가 고해성사를 통하여 알게 된 신자의 비밀이나 공직자나 조직원이 직무상 취급한 비밀을 함부로 터트리고, 부부나 친구사이에 믿고 털어놓은 비밀도 동네방네 퍼트린다면, 이러한 사회에서는 상호간의 믿음은 사라지고 불신과 경계만이 팽배할 것이다. 불법행위가 척결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무차별적 폭로를 자행하는 자의 계획된 놀음에 휘둘리다가는,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가 있다. 민주법치국가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든지,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은 법치주의의 확립에 도움이 안 된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배척되어야 한다. 적법절차의 보장이 없는 법치는 없다. 제발 영웅이나 존경할만한 인물은 아니더라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사표로 삼을만한 인물을 남겨놓기 위해서라도 긁어 부스럼인 과거지사는 그냥 덮어두었으면 한다. 자칫하다가는 이 나라의 모든 지도자들이 존경은커녕 실망과 증오의 대상이 될 것 같다. 이는 국제적으로 보면, ‘누워 침 뱉기’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