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법원게시판에 올라 온 금산시군 법원장인 유재복 부장판사의 글이라며 참고로 보라고 판사로 재직하고 있는 친구가 보내 온 메일 글로 우리 모두 한번쯤 다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 소개합니다.


                   무차별적 재미(fun)에 대하여



  “내 이름은 김삼순이 국민드라마로 떴다. 올해 방영된 드라마 중 처음으로 시청률 40%의 벽을 깬 삼순이의 성공 비결은 무차별적인 재미(fun)다.” 이것은 2005년 7월 5일자 중앙일보의 ‘분수대’에서 옮겨 적은 글귀이다. 갱년기를 맞은 탓인지 뒤늦게 홈드라마(soap opera)에 맛이 들린 아내가 “파리의 연인”, “아일랜드” 이래 최대의 걸작이라며 인터넷방송으로 기왕의 방영분을 보면서 “같이 보자”고 꼬드겨, 그 때부터 위 드라마의 시청자가 되었다. 알면 보인다더니, 위 드라마에 대한 네티즌들의 호들갑이 유별나다. 덩달아 치켜세우는 매스컴도 마찬가지이고.



  스토리 전개가 유치하고 변덕스러워 헷갈리기는 하지만 잘 따져보면 아내의 말대로 '걸작'이기는 하다. 뭐니뭐니 해도 시청을 하고 나면 그 다음회의 방영을 기다리게 하는 마력이 있는 드라마다. 여자 주인공 김삼순의 거침없는 코믹연기와 당당하고 솔직한 태도가 돋보였다. 몸짱이니 얼짱이니 하는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뚱뚱하고 성적 매력이나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고 촌스럽기까지 한 노처녀를 캐릭터로 내세워 솔직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21세기형 새로운 여성상으로 자리매김시켰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제 여자도 남자와 견주어 하나도 꿀릴 것 없는 동등한 인격체이다. 그러니 여자도 기죽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특히 마음에 드는 대사가 있다. 마지막회의 “어쩌면 헤어질 수도 있겠지만, 두려워하지는 않겠다.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케이크를 열심히 구우며, 나 김삼순을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독백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그러나 트집잡는다 할는지 몰라도 너무 흥미위주다. 요즈음의 세태라며 뒷방 노인네처럼 구시렁대지 말라면 할말은 없다. 그렇지만, 가족들이 모여서 시청하는 저녁드라마가 가슴에 와 닫거나 가슴을 울리거나 마음을 살찌우는 스토리나 대사는 없고, 허무개그처럼 그냥 웃다가 마는 말 잔치나 장면이 너무 잦으니 씁쓸하다. 그리고 민망하다. 성적으로는 알 것 다 아는 아이들과 한자리에 모여 오붓하게 보는데, 낯뜨거운 장면이 너무 잦다. 지나치게 진한 키스장면이나 벌거벗은 이불 속 남녀의 모습이나 섹스나 성적인 상상을 유도하는 장면이나 대사를 자주 그리고 버젓이 보여준다. 성을 개방하자는 것인지, 성적 욕구의 자제를 내숭이라고 꼬집자는 것인지, 성의 상품화를 노리는 것인지.



  스토리보다는 재미를 끌 수 있는 장면이나 대사로 승부를 걸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유치하고 요상하고 저속하고 비윤리적인 대사나 행동도 불사한다.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한 세상에 솔직함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걸리면 일단 부정하다가 탄로 나면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위선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남들과는 차별화하며 독야청청 할 것 같더니만 까발리고 보니 ‘그 밥에 그 나물’인 모습을 보여온 이 나라 (일부)지도자들에게 염증을 느껴온 시청자들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방법을 터득이라도 한 듯하다. 그래서 삼순이로 하여금 솔직한, 때로는 노골적인 언행을 그토록 당당하게 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작가는 이것이 순수한 인간의 본디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시청률을 올리려고 아주 작정을 한 것 같다. 요새 같이 뜨고 있다는 다른 홈드라마의 여자주인공이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생명공학박사나, 요가로 날씬해졌다는 여가수도 양념 치듯 들먹인다. 그들의 인기마저 도용해서라도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싶은가 보다. 배경음악도 그렇다. 소위 쉰 세대, 신세대의 노래, 영화음악과 대중가요를 삽입하고, 피아노만이 아니라 기타도 등장시켰다. 개그, 욕설, 고함, 감미로운 밀어만이 아니라 영어대사도 등장시켜 현란한 말 잔치를 벌린다. 지식을 연구가 아니라 정보를 통하여 얻는 인터넷 시대에 꼭 맞는 글재주요 말재간이다. 아마도 작가는 청소년부터 장년층까지를 시청자로 하는, 그야말로 “국민적 드라마”를 노렸던 것 같다. 시청률을 지나치게 의식한 얄팍한 상흔으로 보일법한데, 이것이 작가의 번득이는 재치란다. 네티즌들이 “작가의 센스가 놀랍다‘고 한다니 토 달 말이 없다. 이러한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일까. 과연 바람직한 현상이기는 한 것인가.



  경제는 파탄지경이고 경기가 바닥을 치어 요사이 장사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부동산경기를 잡겠다고 난리법석이지만 이는 극히 일부사람들에 국한된 이야기이다. 허리띠 졸라매며 열심히 살아 온 덕에 돈을 좀 모았으나 뾰쪽한 재주가 없어 노후대책으로 마련한 땅에 공한지세가 무서워 서둘러 건물을 지은 중산층의 건축주들은 요새 머리가 복잡하여 빠개진단다. 비싸게 지어놓은 건물은 임대는 고사하고 기왕의 임차인마저 하나 둘 빠져나가니 태반이 비어가고, 투자한 시설비를 아까워하며 버티고 있는 임차인도 장사가 안 된다며 차임은커녕 관리비마저 연체하고 있고, 부과되는 각종 세금이나 공과금은 오히려 늘어나니 건물의 관리마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도 더 어려운 이웃들은 엄살떤다고 곱지 않은 시선이다. 각자의 처지에서 각자의 잣대로만 상대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가진 자는 싸잡아 범법자로 몰아붙이는 사회적 분위기이니, 건물이라도 한 채 가지고 있는 중산층은 이래저래 착잡하고 서글프고 고달프다.



  정말 일부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중산층도 서민층도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이다. 상대적 빈곤감은 극빈자와 하나도 차이가 없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전면적인 토요휴무제까지 실시되어 시간은 남는데 재미있게 보낼 여력이 없다. 많지도 않은 자식들을 기죽게 할 수가 없어 부모 된 도리를 한답시고 자청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니,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이래저래 부모는 쪼들리고 궁색하다. 하소연할 곳마저 없으니 가슴만 답답하다. 형편이나 상황이 이러하니 마음놓고 즐길 재미거리라고는 텔레비전시청뿐이다. 이래 웃건 저래 웃건 웃다 보면 고민이 사라지니 시청자들은 점점 더 재미거리를 찾게 되고, 텔레비전의 프로는 더욱더 흥미위주로 나간다. 이유는 다르나 젊은층도 마찬가지이다. 시청각에 익숙하도록 훈련되었고, 말초신경을 자극하여야 재미를 느끼는 세대들이다. 내용보다는 출연자의 외모와 말재간과 튀는 언행만으로 채널을 선택한다.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행복이다. 행복은 언제 느끼는가. 재미있을 때다. 이렇게 본다면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감성적이고 피상적인 행복일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장삼이사는 이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배부르고 등 따습고 마음껏 웃을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무차별적 재미를 찾는 현상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곱씹어 보자. 드라마의 막강한 영향력과 이성적으로 미숙한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과 이 나라의 미래가 그들에게 달려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다시 생각해 보자.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말은 화살과 같아 한번 내 뱉으면 다시 거둬들일 수 없다.” 절제와 인내는 모르고, 그냥 느끼고 튀어나오는 대로 언행을 한다면 동물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말이나 행동은 그냥 원초적 본능에 따라 ‘치고 받고 하는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된 사고를 거쳐서 ‘가려가며’ 하여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차피 세상은 다른 사람들과의 어우러짐 속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제멋대로 하는 언행을 당당함이라든가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궤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