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이 수렁에 빠진 이유


요즘 젊은 세대들은 필리핀이 우리보다 잘 살았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필리핀은 한때 우리보다 잘 나가는 나라였다. 또 장충체육관을 비롯한 여러 시설을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에 원조해준 고마운 나라였다. 특히 필리핀은 농구를 잘했다. 한국팀의 신동파, 박신자 선수 등이 강적 필리핀을 꺾었을 때 온나라가 떠들썩했던 경험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민주화의 역사적 경로도 비슷했다. 박정희 독재와 마르코스 독재, 한국과 필리핀의 민주화운동, 우리가 먼저 박정희 독재정권을 몰아냈지만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서고 이에 대한 항거가 계속되고 있던 사이, 마르코스 정권이 야당지도자 아키노를 암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피플파워에 의해 타도됐다. 70-80년대 내내 한국의 양식 있는 인사들은 필리핀의 민주화운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언론도 외신면의 주요기사로 다뤘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과정은 판이하게 다르다. 한국이 실질적인 민주주의 정착으로 나아가고 있는 과정에 IMF위기를 맞았다. 그 이후 고도성장의 신화가 끝나고 여러 요인 때문에 장기적인 침체에 빠진 반면, 필리핀은 민주화의 진전과 지방자치의 발전 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후진국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시아연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일주일간 필리핀을 방문하여 필리핀 복지개발부와 각종의 주민운동조직, 빈민촌의 현장실태를 직접 돌아보았다. 그런데 일주일 내내 필자의 뇌리에는 이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필리핀 정부는 2004년의 GDP가 1천75달러, 실업률이 10.9%, 2006년 성장률 5.6%, 빈곤율 24.7%로 설명했다. 하지만 필리핀 복지개발부의 주된 정책목표가 주로 빈곤층과 여성, 장애인 등에 대한 잔여적 복지서비스에 있었다. 국민의 절반이 사실상 실업상태거나 주거와 교육 등이 매우 열악하고 도로, 철도, 병원 등 사회적 기반시설이 너무나 취약한 현실을 감안하면 필리핀의 고민은 정부의 수치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마닐라 시대의 매연과 그래도 7천2백만 필리핀 사람 중에 잘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수도 마닐라의 가난에 찌든 풍경은 도로, 교통 등 도시기반시설과 주택, 수도 등 생활조건으로 볼 때 우리의 70년대 초의 수준이었다. 60년대 우리가 100 달러의 빈곤에 허덕일 때 700-800달러의 필리핀이 아니었던가. 필리핀은 어째서 30여년 동안 제자리 걸음을 한 것일까?


첫째는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였다. 필리핀 사회의 300개 가문이 행정, 입법, 사법뿐 아니라 경제, 사회 각 분야에까지 독점하면서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르코스 독재가 무너졌지만, 또 다른 가문이 등장했을 뿐 실질적인 기득권구조를 바꿔내지 못했다. 둘째는 경제발전전략이다. 사탕수수, 철광석 등 풍부한 자원을 갖고도 경제성장에 실패한 것은 300대 가문의 기득권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전제조건에서 자생적 발전전략을 추구해왔다는 것이다. 필리핀 300대 가문은 원자재를 미국 등에 수출하고, 자국시장에서 엄청난 폭리를 취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해왔으나 이들은 국내산업 발전에 필요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필리핀에 변변한 생산시설이 거의 없고 관광수입과 해외이주노동자의 송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300대 가문의 기득권 보호에 이용당한 자생적 발전전략의 실패증거이다. 셋째는 필리핀의 정체성 혼란이다. 필리핀은 스페인, 미국, 일본의 식민지시대를 400여년 거치면서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을 기본구성으로 하고 있다. 이로 인한 국민의식의 혼란은 언어, 문화 등에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반면, 순기능적 요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필리핀의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출전: [이태복의 새벽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