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 오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바로 펭귄의 아버지이다.

신사 같은 귀여운 모습과 함께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우리네 3~40대 가장(家長)의 위치와 매우 공감가는 동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5월의 남극은 해가 뜨지 않는 암흑의 대빙원(大氷原)이다. 펭귄의 암놈은 이 5월을 기다렸다가 내륙 깊숙이 들어와 알을 낳는데 하나만 낳는다.

얼음 바닥이 아닌 곳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알이 얼어붙어 버린다. 그 알을 지키고 품는 것은 수놈 담당이다.

알이 깨기까지 먹지도 못한 채 꼬박 품고 있어야 한다.


그동안 암놈은 먹이를 구하기 위한 기나긴 장정(長征)을 떠난다.

바다에 이르러 새우류의 먹이를 잔뜩 뱃속에 저장시킨 다음 빙원을 가로질러 되돌아 온다. 돌아오면 새끼가 부화되어 있고 아빠와 교대해서 뱃속에 저장해 온 양식을 소처럼 반추하여 새끼에게 먹인다.


달포 남짓 꼬박 굶은 데다가

눈보라와 폭풍 속에서 시달려 체력 소모에 영양실조가 겹친 수놈은

아내가 마련해온 먹이가 못내 먹고 싶었겠지만 애써 외면을 한다.


그래서 펭귄의 아버지는 선비다. 가엾은 아버지 펭귄에게 조금은 나눠줌직도한데 거들떠 보지도 않고 제 새끼 과보호(過保護)에 여념이 없다.


그리하여 굶주림에 비틀대며 바다를 향하는 수놈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필사적으로 걷지만 다리 힘이 빠져 미끄러지고 나뒹굴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만다.

이렇게 새로운 생명을 위해 버림 받고서 눈을 감는다.

본능적인 새끼 애정은 이처럼 아름다우면서 처절하다.

남극에서는 아버지 펭귄들이 가혹한 시련을 겪고 있는 5월이다.


그래서 5월이 오면 이 아버지 펭귄 생각이 난다.

옛날 우리 살림에는 온 식구가 수입가계(收入家計)에 왕성하게 참여했었다.

댓 살 된 아기도 반쪽 난 숟가락으로 감자를 긁었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도 쌀 속에서 뉘를 가려내고 길쌈도 돕곤 했었다. 그랬으면서도 아버지의 권위는 대단했었다.


그러나 오늘 날은 온 식구가 왕성하게 지출가계(支出家計)에만 참여하고 있다.

오로지 아버지 혼자만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뼈가 닳도록 일하면서

그 왕성한 지출을 감당하고 있는데도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없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지만 어린이가 왕이요 어머니가 여왕일 뿐....

아버지는 비틀비틀 쓰러지며 걸어가는 펭귄의 몰골이다.

그래도 갈수록 여성의 사회 참여율이 높아가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주위에서 펭귄의 아버지와 같은 3~40대 동료들을 흔히 보고 있다.


어느 날 덜컥 교통사고로 또는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한평생 가족만을 위해 몸을 바치는 아버지들...

이제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고마움과 깊은 이해의 정을 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1996.5.19.조선일보 이규태칼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