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디자인' 만큼 미화된 용어도  없을 것이다. 

창의적이면서, 뭔가 세련되고, 도시적이며, 시대를 앞서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육체적인 노동 보다는 정신적인 노동으로, 멋진 스튜디오 안에서 모든 것이 진행될것 같은 점도 매력이다.

영화나 잡지 속에서 만나는 디자이너들의 모습은 결정적으로  환상의 세계를 만든다.    

시크한 디자이너들이 쓱쓱 그린 그림들이 실제의 제품으로 생산되어  일상의 삶 속으로 침투한다거나

수많은 이들이 접하는 공공의 장소에서 쓰여지고, 이들이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수 있다니,

세상에 이보다 멋진 직업이 있을까?


이것은 물론, 디자인을 실제로 접해보지 못한 일반인이나, 고등학생들이 가질수 있는 환상으로

대학의 디자인전공자들만해도, 매 학기를 거치면서 점차 이 꿈에서 깨어난다. 

디자인교육은 어쩌면 꿈을 깨는 일이지도 모른다.


꿈에서 깨어나면, 이제 정확히 자신의 일을 인식하고 제대로 수행하는 것일까? 

 직업적인 디자이너들 조차 여전히 자신들이 하는 일의 실체를 모르며,  그것의 파급효과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 산업디자인보다 더 해로운 직업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극소수이다. 

어쩌면 이보다 더 위선적인 직업은 단 한 가지일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구매하도록 설득하는 광고 디자인이야말로 오늘날 현존하는

직업 중 가장 위선적인 일일 것이다. 산업디자인은 광고업자들이 호객하는 

겉만 번지르르한 쓸모없는 것들과 영합함으로써 두번째로 위선적인 직업이 되고 있다.

....... 

시각적, 물리적 그리고 화학적으로 잘못되어 가고 있는 환경 속에서 

건축가, 산업디자이너, 기획자 등이 인류를 위해 취할수있는 가장 간단한 최선의 행동은

그들의 작업을 중단하는 일이다. "


세계적인 디자이너이며, 디자인이론가인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 1927 - 1998)이 한 

이 말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 대한 비판이라 더욱 놀랍게 들린다.  

오늘날 디자인이라는 이름의 일들은, 한 마디로 우리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이기가 아니라 ,

그것을 파괴시킬수 있는(이미 파괴하고 있는) 괴수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지연하기 위해, 디자이너에게는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과 윤리의식'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윤리의식'이란 무엇일까?

디자이너들에게는 '의식'이 있을까?

디자이너가 알아야 할 '디자인 외적인 지식' 이란 무엇일까?

 

디자이너가 윤리의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연 이를 지킬 수는 있는 것인가?

오늘날의 이 심화된 자본주의 경쟁체제와 오로지 이윤추구에 매몰되어 있는 대부분의 

기업구조 속에서.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기업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하는가? 떠나야하는가? 

디자이너가 기업을 떠난다면 그는 디자이너인가? 

대량생산체제의 산업구조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소규모 디자인, 공방활동, 공예 등이 

산업디자인의 대안이 될수 있는것인가?

 

파파넥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꼬리를 문다.  분명한 것은, 

디자이너 자신의 의식과 세상을 이해하려는 광범위한 노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는 중요하다는 점이다.

적어도 우리가 지향하는 디자인, 디자이너라는 전문가는,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일을 지상의 과업으로 여기는 기업가들의 첨병,

상업주의의 시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디자인은  오늘날의 수많은 직업 중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직업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