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라고 한다.

이 말은 맞는 말일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언어가 의사전달을 위한 매개체로 쓰인다는 점이 틀림 없지만,

전달  이전에 의사, 즉 생각 자체를 만든다는 점에서  이 표현은 틀리거나 적어도 불완전하다.

 

우리는 다른 이에게 생각을 전할 때 언어를 사용하지만

혼자 생각을 할때도 언어를 쓴다 

소리를 내건 속으로 하건 이 '혼잣말'을 한다.

".... 그때 그걸 하지 말했어야 하는데.... ",

".... 식당에서 봤던 그 여자  정말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데....(중얼중얼)"

각 개인의 사유 자체가 언어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 때문에 언어를 갖지못한( 장애가 있거나,  어휘가 극히 제한된) 사람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는(제한될수 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아기들의 경우는 가장 극적인  예다.

눈을 떠서 처음으로 외부세계를 접하는 아기는

엄마, 아빠라는 언어를 익힘으로써, 엄마라는 외부세계, 아빠라는 외부세계를

구분하고 인식하며  '받아들인다'.

이어서, 맘마, 장난감, 응가, 쉬 등의 단어를 익히며  주변의 사물과 행동들을 개별화한다.  

나아가 즐거움, 슬픔, 분노 등과 같은 감정  

혹은  보호, 옮음, 나쁨, 금지 등과 같은 추상화된 개념들로 인식을 확장해 가는 것이다.

극적인 변화가 덜할 뿐이지 아기들의  언어습득과 세계인식의 일치는

모든 연령의 인간에게 적용된다.

 

언어는 사회구성원들이 임의로 약속한 상징체계이므로

자연적이거나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이며 시대적이다.

이에 더해 한 개인속의  문화와 정체성이  또한 반영된다.

그러므로 개인이 구사하는 언어속에는 그의  지적 능력 뿐 아니라,  문화와 가치관이 반영된다.

타인을 접할 때 우리는 그의 첫 인상이 아니라 ,

5분만 참을성을 가지고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들어본다면

그와  그가 속한 사회를  보다 정확히 알게된다.

만약  훨씬 더한 인내심과 학구열이 있다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다양한 원시부족들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레비 스트로스와 같은 인류학자들처럼  상대방을 분석해 볼 수도 있다.

 

언어가 (외부 세계)인식의 통로이며 창틀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세계(자신이 속한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며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가와 같은 

인식론적 주제라는 점에서,

언어에 대한 연구는인문학의 모든 분야와 관련된다.

20세기에 들어 과거 언어학으로부터 새롭게 태생한 기호학을 비롯해

현대 철학과 인류학, 정신분석학의 중심적인 과제 혹은 방법론이 되고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

 

평생 '존재'의 문제를 천착했던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인식되는(현상하는)  세계가 존재 자체라고 했다. 

'존재(한다는 사실)'는 우리가  결코 규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지금 현상하는 바로 이 세계,

그것이 존재(의 모든 것)라는 말이다.

 

이때 하이데거가 강조한 언어는 과학적 언어, 논리적인 언어 즉, 사회가 이미 규정한

언어체계속의 언어(랑그)보다는 끊임없이  의미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적 언어(파롤)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