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태계와 대학의 몰락 / 오길영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최근 주목받는 생명주의 비평(ecological criticism)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생태계의 균형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경제나 출판, 혹은 문화생태계가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그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균형이 긴요하다.

예컨대 ‘경제민주화’는 망가진 경제생태계를 회복하라는 요구이다. 문학예술의 경우 창작자, 독자와 비평가, 출판사,

신문, 도서관, 문화정책 등이 생태계를 구성한다. 그중에서도 좋은 작품을 찾아 읽고 평가해주는 ‘공중’(公衆)의 역할이 관건이 된다.

그러므로 공중을 기르는 핵심 기관 중 하나인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학은 전통적으로 한 국가의 문화생태계를 유지하는 균형추 구실을 해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학의 위상도 바뀌지만, 민주적 정치의식과 문화생태계를 지키는 교양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는 역할을 버릴 수는 없다.

대학이 당장 써먹을 수는 없는 인문학과 교양과목도 핵심 과목으로 개설하는 이유이다.

지난 몇 년 새 이런 대학의 모습은 크게 훼손되었다. 자본의 논리가 대학에도 관철되면서 기업이 요구하는

‘실용지식’을 앞서 가르칠 것을 대학에 압박해 왔다. 그래서 회계학을 필수 교양과목으로 정하는 대학도 나타났고,

교육부에서는 취업률을 대학 평가의 중요 지표로 삼아 ‘대학 구조조정’을 강행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내가 알기로 선진국 중에 취업률을 대학 구조조정이나 대학 평가의 주요 지표로 삼거나, 회계학을 필수 교양과목으로 정한 나라는 없다.

대학은 취업 준비기관이 아니라 학문의 전당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학은 취업자 양성소로 변모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청년실업에 일차적으로 책임을 질 곳은 대학이 아니라 국가, 정치, 기업이다. 자신들의 책임을 대학에 떠넘기는 셈이다.

한국의 교육관료나 대학 경영자들이 따라야 할 전범으로 여기는 미국 대학의 실정은 어떨까.

이런 질문을 품고 ‘작고 강한’ 미국 대학들의 교육현실을 분석한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을 읽었다.

이 책에는 학문의 전당인 대학을 지키려는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이들 대학은 책임감 있고 유능한 시민을 기르는 것을 핵심 목표로 내세운다.

시민권 교육은 대학의 기본적인 관심사이며 관련 내용을 필수 교양과목으로 다룬다.

또 생물학이나 수학까지 포함해서 모든 과목에서 자기 견해를 조리 있게 표현하는 글쓰기 능력을 요구한다.

대학교육의 목적은 지식을 기계적으로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게 아니라 졸업 뒤의 삶에 필요한 기본능력을 개발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예컨대 세인트존스대학 교과과정의 핵심은 100권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대학들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과 협업의 가치를 가르친다. 툭하면 미국을 따라하자고 주장하는 한국 대학의 경영자나

교육관료는 왜 이런 건 따라하지 않는지 유감스럽다.

 

한 사람의 감수성은 젊은 시절에 큰 윤곽이 그려지며 그 틀은 나이 들어서도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화생태계의 저수지로서 대학이 제구실을 못하고 취업자 양성소로 전락할 때,

취업 준비에 쫓겨 학생들이 읽고 봐야 할 문학작품, 고전, 영화도 즐길 여유가 없을 때, 그런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읽고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개진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할 때, 문화생태계의 생명력은 사그라진다.

그리고 균형 잡힌 문화생태계에서만 움트는 시민적 양식과 비판정신의 튼실한 뿌리를 갖지 못한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나무가 자랄 수도 없다.

대학과 문화생태계의 파괴는 곧 민주주의의 몰락을 낳는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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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옮긴 글. 

위 내용이  너무나 실감되는 요즘 대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