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전시기획자로 일하며 여러 작가들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현대장신구전을 위해

한국에서 활동하는 44명의 장신구 작가를 선정하고 이들의 가이드 역을 한 것이다.

각기 다른 작업을 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작가들에게 기획 의도를 전하고

그들 개개인이 가진 역량과 특성을 끌어내,

관객과 만나는 통합적인 공간속에 이들을 녹여내는 것이 기획자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전시회의 수준은  참여작가들이 결정되는 순간 거의 정해진다.

작가가 보유하고있는 평소의 역량은 행사를 준비하는 노력보다 중요하다. 

 

작가는 누구인가. 어떤 이들이 작가가 될수 있는 것인가?

작가의 일은 뭔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수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뭔가를 만드는 주체인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가는 일이 아닐까?  

 

Output 은 Input에 의해 결정된다.  

한 작가로 부터 나오는 것 보다, 그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에 주목할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는  무엇을 보며, 무엇을 읽고, 무엇을 소비하는가 .

지금 무엇을  경험하고 무슨 영향을 받고 있는가? 

진정 뭔가를 섭취하고 있는 것일까?

 

 

" 나는 감히 지금까지 글을 써왔지만, 내가 읽은 것이 내가 쓴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독자이다."    

 

아르헨티나가 낳은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의 이 말은   

모든 예술가들에게 울리는  경종 같다.

실제로 엄청난 다독가, 탐독가로 유명한 작가는 1955년 이후에는

완전한 실명의 상태로 살았다. 그러나 그는 '내 기억은 내 생각보다 우위에 있다'고 하며

그가 행한 방대한 독서와 지적 사유를 바탕으로  저술을 계속해 나가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많은 작가들은 생산에 집착한다. 만들기에 급급하지만  막상 작품을 만드는 자기 자신을

만드는 일에 관해서는 소홀하고 서툴기도 하다. 

인풋input 의 물줄기가 이미 말라버린 작가들의 작품들 속에서

뭔가를 읽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