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을 올바로 감상하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감각적으로 느끼고 판단하는 일, 논리적인(언어적인) 지식을 동원해 이해하는 일이 그것이다.

두 가지는 미술을 바라보는  창틀이며, 미술품을 감상하거나 평가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다.

두 능력을 함께 갖추어야 비로소 미술품의 감상(작가라면 미술품의 올바른 제작) 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우리가 항상 당하게 되는 슬픔은,

그들에게는 지식은 있으나 직관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당시 공예와 일상사물이 홀대받는 이유가

많은 미술전문가들, 특히 미학자, 평론가들이 지식은 있으나 직관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는 것은 많지만, 막상 사물의(미술품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하지 못하며,

그래서 그들은 주로 사변적인 미술 이론이나 역사적인 연관, 개념적인 주제 등이 '읽혀지는'

그림이나 조각, 골동품 등에 대해서는 할 말을 찾지만

바로 자신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주로, 쓰여지는) 사물들에 대해서는

할 말을 찾지 못하거나, 그들이 미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약 70년전의 일본사회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야말로 더 실감할수 있는  말이 아닐까.

우리의 미술판에서 직업인으로 일하고있는,

주로 책보고 공부한 평론가, 큐레이터 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늘 실감하는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