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을 부추기는 현대사회는  거대주의를 미화화고 강요한다.

작고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보다, 특이하고 강하고 큰 것만이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세뇌한다.

개인적이고 지역적인 것보다 국제적이고 세계화된 것을, 작은 규모의 생산이나 유통보다

능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거대 규모의  산업구조가 우리 시대에 걸맞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와 같은 가치관은 정치가들의 근시안적인 성장주의와 결합하고 대중 매체에 의해  합리화되고 증폭된다.

다수의 개인들은 자기 자신의 '작은' 일상과 생활세계에 대한 관심 대신,

타인의 '거대한' 성공담, 비현실의 환타지를  동경하면서 내면화한다.

그리고 경쟁과 서열화로 인한 압박감과  열패감을 떠안게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 "

 

 

이 말은 독일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E.F. Schmacher)가 1973년 발표한 그의 글 모음,

 "Small is Beautiful - A Study of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인간 중심의 경제학'' 이라는 책에서

비롯되어 지난 수십년간 회자되었다. 또 오늘날에도 환경문제의 심각성과 함께  여전히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말이다. 

 

대량 생산의 문제, 이로 인한 유한 자원의 무한적 소비 경향, 공업 자원과 인간 욕구에 대한 자연의 허용 한도,

대규모 조직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경제학자 슈마허는 이 책에서 '인간 중심의 기술'을 제안한다.  

그의 사상의  배경에는 제2차대전 이후 대량 생산에 의한 대량 소비 사회의 진행, 대량 생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자원 투하량의 증가,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의 대규모화와 거대 조직화 등의 원인이 있다.

그는 인간 중심의 기술을 주창하면서 부유한 나라의 거대 기술보다는 값이 싸고 누구나 이용 가능하고,

이를 통해 자본 집약적이고 대량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량 생산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을 주창한다.

 

대중에 의한 생산 기술은 현대의 지식이나 최량의 경험을 활용하며 분산화를 촉진하고, 생태학의 법칙에 벗어나지 않고

희소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며, 인간을 기계에 봉사케 하는게 아니라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만들어주는 기술을 말한다.

그는 이러한 기술을 '중간기술(中間技術)'이라고 이름 붙였다.

슈마허의 제안들은 이후 많은 국가들의 경제정책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으며,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붐을 일으켰던

벤쳐 기업의 이념적 배경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국제화, 무역자유화,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등장, 금융자본의 전지구적인 횡포 등 

거대화를 지향하는 세계적 추세는, 아무런 제어장치도 없이  점점더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이를 제어하며 모든 작은 것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해 나갈수 있을까.  

 

작은 것에 대한 관심 촉구는 경제학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과 사람들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를 요구한다.

인식 변화뿐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의  실천적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아름다움이, 美 라는 것이, 사실은 

큰 것보다 작은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흥미롭게도, 오늘날의 미술 처럼 공허한 거대주의를 잘 보여주는 예도 없을 것이다. 

유명 미술관들을 채우고 있는 오늘날의 개념미술, 설치미술들의 현장을 보자. 유명 비엔날레들의 모습들을 보자.

거대주의에 현혹되고 상업주의에 매몰된 현대미술가들의 작업은 과연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가.

오늘날의 미술의 진정한 실체는

전시회가 끝날 때마다 거대한 쓰레기더미로 변하는 그 개념의 각종 소도구들과 선정적 구호들,

그 순간적인 환타지를 위한 무대장치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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