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유산, 식탁으로의 초대

 

 

산속 동굴에서 짐승처럼 살던 사람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헤파이스토스에게서

갖가지 기술을 배워 이제는 집에서 일 년 내내 평화롭게 살도다.”

 

 

1,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철기를 만드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를 찬양한 노래이다. 신들에게 도구를 만들어 준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류의 문명을 일으킨 장인의 상징이다. 못생긴 헤파이스토스가 아름다운 비너스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던 것도 사물을 만드는 기술 덕분이었다. 이렇게 신화 속에 반영되었듯, 인류는 물질세계를 이해하고 이를 가공하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문명을 일구어 내었다. 물질의 가공과 도구의 제작은 문명 간의 주도권을 결정하고 삶의 패턴을 구성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금속재료의 가공과 활용은 그 중심이 되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철이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4000년경 소아시아 지역에서다. 이후 여러 고대국가에서 이 철을 다루는 기술이 개발되었으며, 기원전 1000년경 인류는 철기시대라는 역사의 장을 열었다. 철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용융온도를 가진 동(청동) 가공의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인류는 철도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청동보다 강하고 날카로운 철제 무기가 개발되면서 부족국가들의 패권이 바뀌었으며, 더 정교하면서도 내구성을 지닌 각종 철제 도구가 생활에 공급되면서 인류의 삶의 방식을 바꾸었다. 특히, 철을 주물기법으로 복제생산하면서 철 문화는 생활 속으로 더욱 광범위하게 침투한다. 철 주조의 가장 빠른 기록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농기구와 무기류로, 기원후 14세기가 되어야 나타나는 유럽에서의 철 주물 생산품 에 비하면 놀랍도록 앞서 있다.

한반도의 철기 문화도 이미 기원전 3,4세기 무렵부터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된 것으로 추정한다. 삼한 시대에는 변한에서 철이 생산되어 낙랑, 일본 등에 수출되었으며, 철은 당시 교역과정에서 화폐처럼 사용되었다고 한다. 가야국은 고도로 세련된 철제 무구武具들을 생산한 철의 나라로 이름을 떨쳤다. 이들로부터 비롯된 이 땅의 철물 문화는, 삼국 시대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생활을 위한 도구로, 투쟁을 위한 무기로,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종교용품과 예술품의 모습으로 계승되면서 조형문화의 한 축을 구성했다.

 

2. 철은 예술가들에게도 매력적인 소재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하고 저렴한 금속인 철은 높은 경도와 강도로 인해 독특한 조형성을 지니며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실과 같은 선재, 종이 같은 판재, 각종 굵기와 두께와 단면을 지닌 봉, 괴 등의 형태는 물론, 이들의 변형인 튜브, 철망, 타공판, 요철판 등이 조형과 건축의 재료로 활용된다. 또한 높은 강도와 내마모성으로 인해 부분들의 이음이나 결합을 위한 각종 못, 나사, 걸쇠, 이음쇠, 경첩으로 제작되어 금속과 금속, 혹은 금속과 타재료를 결합하는 구조적 혹은 시각적 요소가 된다.

철의 가소성可塑性은 단조를 가능하게 하며 불에 녹아 쇳물이 되는 용융성은 주조를 가능하게 한다. 망치질과 열간가공(뜨거운 상태에서의 가공)에 의해 이루어지는 단조(단금)는 대장일의 원형적 기술로, 재료와 맞서는 인간의 노동행위를 보여주는 단적인 상징이 되기도 한다. 단조된 요소들을 서로 접합하는 경우, 철은 비철금속에 비해 낮은 열전도율을 가지고 있어서 용접이 용이하다. 조각이나 건축과 같은 입체미술의 역사가 깍아나가는조형방식에서 붙여나가는방식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철, 그리고 이를 다루는 용접기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전통적인 아크 용접뿐 아니라 불활성 가스를 활용하는 티그TIG, 미그MIG 용접, 그리고 마이크로 용접 등의 새로운 용접기술이 개발되면서, 더욱 다양하고 정교한 조형이 가능해졌다.

주조는 형틀(거푸집)을 활용한 복제생산이므로 산업적 생산방식으로 흔히 사용된다. 주조 역시 전통적인 모래주조가 여전히 활용되는가 하면, 캐드CAD에 의한 원형제작과 금형 가공 등 디지털 설비에 의한 더욱 정교한 제작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하고 있는 안성주물과 협력업체로 참여한 대한특수금속은 주물가공기술의 전통과 현대를 잘 보여준다.

단조와 주조 방식 외에도 근래에는 연철판이나 스테인리스 스틸판을 이용해 실용기물을 제작하는 공예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그동안 귀금속과 비철금속을 주로 다뤘던 공예가들이 철이라는 재료로 눈을 돌려 테이블웨어, 문방용품, 금속가구, 조명, 건축부속물 등을 수공기술과 산업기술을 혼용하여 제작함으로써, 공산품과 확연히 구별되는 심미성과 조형적 특징을 담은 철재의 사물들을 생활 공간에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3. 포스코1%나눔재단이 후원하는 <이음전>2017년 주제를 식문화로 정한 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선,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에서 철 소재의 개발과 공급을 담당한 산업의 주역인 포스코가, 전술한 바와 같은 철의 문화적 의미를 되새기며 이를 일반인들과 공유하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특별하다. 오늘날 우리의 주거 및 생활환경을 구성하는 주 요소인 철이 재료로서의 기능적 가치뿐 아니라, 역사성과 지역성을 담보한 문화 유산의 한 축을 구성해왔음을 증명하고 이를 오늘날의 공간속에서 되살린다는 의미다.

또한 이번 전시의 품목을 식문화를 위한 도구로 정한 것은, 생활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근간이 되는 식생활의 격을 높일 수 있는 기물과 도구를 개발하고자 한 것이다. 음식과 음료를 함께 나누는 식사 행위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수 행위인 동시에, 인간과 인간을 잇는 정신적 유대와 문화적 교류의 핵심적인 장이 된다. 비단 음식 뿐 아니라 식사를 위해 동원되는 유무형의 모든 요소들이 물리적이고, 심미적이고, 정신적인 의미를 전하고 매개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식생활 용구의 개발은 생활 문화 향상을 위한 어떤 과제보다도 우선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행사의 결과물들은 개인적인 창작 뿐 아니라, 전승의 기술과 현대적 기술의 혼용, 개인작가와 산업체의 협업을 통한 결과물로 구성되도록 기획하고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공예, 디자인, 산업에 모두 관련되어 있는 철 소재의 조형적 활용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창의적인 사물을 개발하고 관련 산업에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철물 문화의 폭과 깊이를 넓히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다.

이번 전시회에는 17명의 작가가 초빙되어 수차례의 워크숍과 토론, 생산현장 방문과 의견 조정을 거쳐 완성된 결과로 70여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45호인 안성주물과, 현재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16명의 금속공예가와 조각가가 함께 참여했으며, 협력생산업체로 안성주물, 대한특수금속, 우림수지금형, 태산몰드텍이 참여했다.

 

4.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유형별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a. 첫째, 용기 형태의 작품군으로 불 위에서 음식을 조리하거나 식탁에서 서빙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산업체와 협업으로 제작된 주물 용기의 경우, 두꺼운 몸체와 낮은 열전도율로 인해, 용기 전체에 열을 고르게 지속적으로 가열해야하는 특정 요리에 쓰이거나, 온기를 보전한 채 식탁에 올려야하는 경우 효과적이다. 안성주물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45호인 김종훈에 이어 아들 김성태가 4대째 이어온 주물공장으로, 지난 100년 동안 가마솥을 비롯한 주물용기를 제작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주물생산업체이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모래주조와 옻칠 마감에 의한 전통 무쇠 솥 세트, 8각형의 팬 등을 출품한다. 서도식은 나무 뚜껑이 결합된 무쇠 냄비와 접시를 출품하는데 역시 주조에 의해 양산이 가능한 상품으로 개발하였다. 박성철의 주물용기 세트는 간결한 사각 기형으로 밝은 색의 옻칠을 뚜껑을 입힘으로써, 주물의 시각적 무게감을 덜어내는 모던한 이미지를 조성하고 있다. 전용일 두 가지 비례의 원형 무쇠 팬은 조리와 서빙용으로 모두 사용할 수 있다. 기형 외곽에 두터운 전을 강조해 손잡이의 역할도 함께 하도록 했다. 류연희와 김경환은 주물이 아닌 판재 성형 방식으로 주전자를 제작했다. 류연희의 경우, 몸체는 연철판으로, 뚜껑과 손잡이는 은, 황동, 나무 등의 재료를 혼합해 사용했다. 보온용 스토브을 내장한 받침을 통해 차의 온도를 유지하도록 했으며, 몸체의 철 표면은 옻칠을 입혀 부식을 방지했다. 스테인리스 스틸판으로 제작된 김경환의 주전자는 망치와 조금정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판금 성형기법을 활용해, 몸체, 뚜껑, 손잡이에 다양한 질감과 색감을 연출했다.

b. 둘째, 용기 외의 부엌 도구류 작품군이다. 가열장치나 기계를 내장한 복합적인 것부터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장식성이 강조된 것들까지 다양하다. 이승렬의 바비큐 그릴은 나무나 숯을 연료로 육류나 야채를 구울 수 있으며 야외뿐 아니라 실내 식탁에 올려 사용할 수 있도록 소형으로 개발되었다. 솥과 불판은 주조로, 외부 형틀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한 후 법랑재질로 코팅했다. 공주석은 피자를 굽는 오븐과 피자 서빙용 칼 등을 제작했다. ‘아궁이라는 이름의 오븐은 전통 아궁이의 열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실내에서는 가스레인지 직화로, 야외에서는 숯을 연료로 피자와 빵을 구울 수 있다. 몸체는 철 주물이며 연료통은 스테인리스 스틸과 황동을 사용했다, 김홍대는 주물로 구이용 불판과 조리용 소형 절구를 제작했다. 하부에 가열 장치가 있는 식탁용 불판은 표면에 있는 얕은 부조의 기하학적 문양을 더해 장식성과 함께 기름을 효과적으로 배출하는 기능적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승현의 큐브형 소반은 철판의 조합과 옷칠 마감으로 제작되었으며 쟁반과 음식상의 기능을 겸한다. 최적의 크기와 최소의 형태적 요소로 이루어진 간결한 형태로, 공예적 기술을 활용한 풍부한 표면 질감과 옻칠의 색감이 돋보인다. 백경찬과 전용일은 뜨거운 용기를 받치는 테이블 매트 세트를 제작했다. 백경찬의 매트 세트는 옛 여인들이 사용한 물동이 받침의 또아리 형상을 응용하고 있으며, 전용일은 나무의 형상을 추상화하여 테이블 위에서 하나의 장식이 되도록 의도하였다. 현광훈은 와인병의 개봉 시기를 기록할 수 있는 정교한 시계장치가 부착된 와인스토퍼라는 독특한 아이템을 개발했다. 와인병 상부에서 정교하고 구조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한편, 와인 시음과 함께 기계적 장치를 조작하고 즐기는 유희성을 제공한다.

c. 셋째, 기능적 측면보다 철 소재의 심미성과 표현성을 강조한 작품군이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작은 조각들을 조합한 정용진의 볼 시리즈는 현대 건축이나 하이텍의 이미지를 구현한 조형미을 보여준다. CAD에 의한 계산, 레이저 커팅, 마이크로 웰딩과 같은 신기술과 전통의 수공기술이 동원되어 철 조형물의 또 다른 양상을 잘 구현하고 있다. 김석영 과반형 센터피스는 주물과 옻칠 마감으로 이루졌으며, 유기적 이미지의 외형 실루엣과 계단형의 기하학적 패턴이 안팎의 표면에서 새겨져 독특한 공감감을 조성한다. 김상훈의 기형 시리즈는 철의 가공과 연관된 불의 시각적 이미지를 표면의 부조의 통해 표현하고 있다. 기형이 가진 공간감, 그리고 흑색의 철 표면에서 타출된 양각의 선 패턴이 강한 생동감을 연출한다. 고보형과 이석영은 식탁의 한 구성요소라 할수 있는 촛대를 제작했다. 촛대는 기능적 역할과 함께 독립된 조형물로도 잘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고보형의 경우, 육중한 철의 중량감과 함께 직선과 곡선의 볼륨과 허공간이 교차하면서 작은 건축물과 같은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유일한 조각가인 오귀원 2종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첫 번째는 성좌도의 이미지를 다룬 작품들로 이 이미지를 기형 내부에 새기거나 철판을 오려 만든 받침의 형식으로 표현했다, 두 번 째는 철 판재에서 절단한 선을 다시 접합해 나가며 면으로 환원시킨 원형의 받침들로 선, , 질량, 질감이라는 물질의 속성과 차원의 변화를 보여준다. 사물의 즉물성 위에 사유와 상상을 환기하는 개념이 중첩되어 있다고 할수 있다.

 

5. 참여작가 17명이 출품하는 70여점의 작품은 식문화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층위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철물의 전통적 유산과 산업적 기술을 이해하고 이 내용을 동시대적 미감과 창의성, 그리고 공예적 기술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구현한 결과물이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그동안 접근이 어려웠던 주물 제작기법을 산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실행한 점이 가장 특기할만하다. 다수의 작가들이 여러 산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완성도 높은 주물작품을 생산하고, 향후 상품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존의 철재용기 디자인을 개선한 것 뿐 아니라, 오븐, 그릴 등과 같이 우리 식탁에 적용가능한 새로운 제품군을 개발한 것도 큰 의미를 지닌다. 한편, 그동안 주로 비철금속을 통해 축적된 전통적 판금기법과 표면가공, 착색의 기술들을 스테인리스 스틸을 포함한 철 소재에 과감하게 적용하고 응용함으로써 철재 주전자, 용기, 소반, 촛대, 조리도구 등 기능적이면서 조형적 특징이 강한 철물공예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번 프로젝트의 성과는 향후의 후속 작업으로 이어질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 1년여의 기간 동안 각 작가들이 기울인 노력과 협력의 결과물은 이번 행사의 취지인 전통과 현대, 창작과 산업 간의 교류를 구체적인 실물 속에 구현한 것으로, 문화활동를 통해 나눔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는 포스코1%나눔재단의 고귀한 뜻에 동참하는 작가들의 화답이라고 할수 있다.

 

 

 

 

 

 

 

전용일

금속공예가,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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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 후원, 2017  이음 전 - 철공예와 식문화  전시회 도록 서문.

207.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