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보다 음식점의 문제 ]

-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바란다.

    

 

 

글. 전용일

 

 

많은 공예인들이 아직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는 일종의 연대감을 갖고 있다. 국내 최대의 공예행사이며

공예인들이 주인공인 잔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회의 성과나 득실을 따지다가도, 행사가 개최되면

일단 방문하고 응원해야 한다는 동업자의식이 발동한다. 대학의 젊은 전공자들에게 이 분야에서도

국가적 규모의 행사가 계속 개최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자긍심과 소속감을 고취시키고 싶은 마음도 비슷하다.

 나에게도 청주는 이미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가 되었고, 올해도 어김없이 4대의 버스를 동원해

전공학생 모두를 수업 대신 청주로 향하게도 했다.

 

그러나 올해의 청주행은 이전과는 달랐다. 자칫 주변의 많은 이들의 발길이 앞으로 끊길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이유는 뭘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난 3회에 걸쳐 전시장소로 사용한 구연초제조창 건물과

이를 중심으로 한 행사장 전반의 이미지가 문제를 누적시킨 것에 제일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전시환경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 당장 그 변화가 불가능하다면,

당분간 다른 장소 다른 환경에서 개최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식이 좋아도 음식점이 이상해서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는 경우는 많지 않은가.

 

행사장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는 꽃단장 아치가 제일 먼저 물음표를 던진다. 이 설치물 속에도 과연 공예가, 디자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포함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풍물시장과 같은 진입로와 행사장 중앙에서 방문객들의

귀를 때리는 공연들을 마주하면, 잠시 내가 지금 어디에 온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방문객 수를 늘이려는

주최측의 노력이라고 일단 참아보자. 그러나 행사장의 인상을 결정하는 건물 외벽의 애처로울 정도의 누추함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시장 건물인 왼편만 보고, 오른편은 쳐다보지 않으면 된다는 말일까.

이 벽을 배경으로 공연과 퍼포먼스,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인 현수막 문구를 읽는 수많은 고등학생들에게,

어쩌면 큰 예산과 심혈을 기울인 시디CD 장막보다 이 벽면의 우울함이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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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행사장 입구의 꽃으로 장식된 대형 아치. 위쪽의 사각형태는 행사의 로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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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진입로와 중앙 광장 오른편 건물들의 외벽. 원색의 각종 현수막과 낡은 벽면으로 인해 시각적 환경이 지나치게 산만하고 누추하다.

 

 

 

건물의 문제는 비단 외부의 시각적 이미지만이 아니다.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는 내부공간도 그러하다.

2011년부터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는 옛 담배공장의 내부공간은 내게는 아직도 황량하고 쓸쓸하다.

큰 스케일의 공간들, 높은 천정, 충분치 않은 조도, 전시 작품들의 밀도나 질감과는 동떨어진 무심한 바닥재과 벽면들.

이 공간감은 환타지를 만드는 퍼포먼스에 적합할진 모르지만, 인간적 크기 혹은 그 이하의 섬세한 공예작품들에는

친화적이지 않다. 공예 본연의 일상성, 삶의 공간과의 연관, 자연과 순환, 치유 등의 테마를 구현하기에는 기본적으로

너무 냉랭하고 썰렁하다. 많은 경우, 개별 작품들은 배경의 공간과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조건이다.

그러므로 이곳 전시장을 사용한 이후부터 유난히 설치적인공간 연출이 기획전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공예전시회에도 물론 다양한 전시 방식, 극적인 효과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런 경향 아래서, 공예품이 불필요하게 대형화되거나, 개별 작품의 밀도보다 공간 연출의 효과가 중시되는 것은

아닌지, 더 나아가 일단 눈길을 끌고 보자는 식으로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이들은

공예비엔날레의 정체성을 위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나는 이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건물과 공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좀더 공예친화적인 전시장이 될수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큰 건물 속의

전시환경을 매회의 행사마다 기획자의 연출에 맡겨 일회적으로 꾸미고 부수고 할 것이 아니라, 좀더 영구적으로 사용할

내부 구조물이 설계되고 건축되어야 한다고 본다. 굳이 건축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임시방편의 가벽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본다면, 이 통 큰 공간속에 성격이 다른 갤러리 5~6개 정도를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공예품의 성격과

다양성을 세심하게 반영하는 건축구조물이라면, 그것이 결코 전시방법을 제한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여전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현대공예를 다양한 방식으로 연출할 수 있다고 본다. 공예품에 어울리는 공간의 크기, 관객과의 거리,

최적의 질감, 그리고 충분한 조명이 확보된 전시공간들이 주어질 때 전시기획도 수월해지고 다양해지지 않을까.

형식이 내용을 정하기도 한다. 공예적인 공간감과 아우라를 출발선으로 할 때, 외부로부터 위촉된 기획자들도

공예의 본질에 좀 더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이와같은 실내건축이 실현된다면, 전시장과 함께 호흡하는

아름다운 카페도 만들어져 지금의 임시급식소 같은 황량한 휴게공간을 대체해야 한다. 품위 있게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작품 감상의 여운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공예비엔날레적인 모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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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손몽주 작 '표류로'설치된 기획전 잇고 또 더하라의 한 공간. 담배공장이었던 이 전시공간은 현재로서는 개별적 오브제 보다는

공간적 연출의 설치 미술에 더 적합한 환경이라고 할수 있다.

 

 

이와 같은 사업들은 무엇보다도 조직위의 안목을 필요로 한다. 효과적인 살림과 운영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점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만큼, 어떤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하는 판단도 중요하다. 나는 장터도 좋고 공연도

참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곳이 아닌 이 공예행사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기획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만난 것은 뜬금없는 경험이다. 왜 이곳까지 백남준이 들어와 앉아 있어야 할까.

공예를 미디어아트와의 연관을 통해 좀더 확산하려는 의도였다면 기획자 혹은 조직위가 찾아봐야할 콘텐츠는 너무 많다.

반면, 같은 확산의 의도지만 알랭 드 보통의 경우는 명분과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문필가의 눈과 입으로

우리 시대의 공예를 말하게 하는 기획은, 적어도 다른 곳에서는 해보지 못한 것 아닌가. 더욱이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하는 그의 책이 발간되어, 공예분야 밖의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그것 자체로도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요약해본다. 여전히 많은 공예인들은 청주의 국제적인 공예행사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 대규모 행사에 대한 평가는

그리 쉽지 않다. 기념품 시장에서부터 소위 엘리트 작가들의 화인 크라프트까지, 공예는 넓고 기대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시 올해의 비엔날레가 뭔가 임계점에 왔으며,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면,

그런 평가를 많이 들었다면 전시환경에 대한 전향적 검토를 바란다. 지금과 같은 건물 외벽 앞에 방문객을 세우는 대범한

혹은 무지한 일은 없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건물에 손을 댈 수 없다면, 다음 행사는 다른 곳에서 해야 한다.

만약, 외벽이라도 말끔히 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의 전시공간을 사용하되, 제대로 된 실내건축을 통해 공예친화적인

전시장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면 한다. 매번 가설무대를 세우는 것도 좋지만, 제대로 된 전용극장을 지어보자는

말이다. 그 속에서도 얼마든지 다양하고 창의적인 전시기획이 가능하니까.

2017년의 비엔날레는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전시공간 속에서 작품들을 만나며,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아름다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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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알랭 드 보통의 '아름다움과 행복의 예술'. 보통은 이번 행사의

기획자, 강연자로 참석했다.

     

 

 

 

* 공예+디자인 지  2015, 11/12월 호에 게재한 글.

*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2015년 9월 16일부터 10월 25일까지 청주 구연초제조창이었던 전시장에서 개최되었다.